운보 김기창 ( 1914 ~ 2001)
Ⅰ. 서론
순수 예술적 관점에서 운보는 끊임없는 실험정신으로 독자적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그는 우리의 전통사상과 소재의 바탕 위에 서양미술의 다양한 표현기법을 과감히 수용하는 일관된 작가정신을 발휘했다. 이러한 동도서기의 작가정신과 실천을 통해, 운보는 선구자의 길을 걸었으며 현대 한국화단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뿐만 아니라, 농아(聾啞) 화가로도 유명한 운보는 장애 극복의 인생 드라마로 많은 이들의 모범이 되기도 했다.
운보의 성장배경과 연대기를 살펴보고, 그의 시기적 화풍을 총 5기로 구별해 미술사상과 조형적 특징을 순서대로 서술해 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운보 김기창(雲甫 金基昶)의 생애
1914년 서울 운니동에서 태어난 운보는 줄곧 외가에서 자라며 5~6세에는 서울 와룡동 서당에서 한학을 수학했다. 이 때 천자문(千字文)과 계몽편, 통감까지 마치면서 후일 운보의 전통사상에 기초한 독창적 동양화 화법에 큰 영향을 미친다. 7세에 승동 보통학교에 입학하지만, 장티푸스로 인한 고열로 청신경이 마비돼 후천성 귀머거리(전농)가 됐다. 이때부터 운보의 운명은 청각이 마비된 상태로 제2의 삶에 접어들게 된다.
어머니를 따라 잠시 개성에 살다가 12살에 서울로 돌아와 복학했으나, 동급생보다 나이도 많고 청각장애까지 겹쳐 수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때 수업시간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교과서의 그림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노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무렵 운보는 이웃집에 사는 한종원과 일본에서 귀국한 외삼촌에게서 미술에 대한 막연한 미의식을 키웠다. 한편, 어머니는 수업을 못 따라가는 아들을 위해 직접 한글과 일본어, 한자까지 가르치는 등 헌식적인 교육열을 보였다.
2. 예술세계
운보 예술에서의 가장 큰 특징적인 현상 가운데 하나는 언제나 무언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느 한 시기에 시도되어졌던 과거의 경향을 새롭게 반추한다는 점이다. 운보가 이당 문하아래 있던 1930년대부터 1945년 해방이전까지 일본화풍의 영향 많이 받은 그였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작품의 경향을 자신의 독자적 세계로 매진하여 현대적인 실험을 거듭한다. 한국성을 찾음과 동시에 동양화의 진로문제가 항상 머릿속에서 고민하고 풀어나갔다.
운보의 예술적 의지는 우향과 함께 구미 순회전을 가지며 강렬한 붉은 색조와 수묵이 주를 이루는 추상과 구상이 뒤섞인 작품으로 우주로 비상항 우주를 집어 삼키고픈 운보의 심정을 잘 표현한 것이며, 그가 가장 아끼는 작품이자 60년대 후반의 대표작이다. 운보는 듣지 못하는 아픔을 예술로 승화시켜 표현하려 했으며 그의 그런 내면적 고뇌는 평생 그를 따라 다니며 생애 전반에 걸쳐 읾음을 통해 또 다른 얻음의 세계를 창출해 내는 영감을 가져다준다. 소리의 잃음은 그림이라는 예술로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해주었고 생의 동반자이자 동료화가인 우향과의 사별은 그릠의 또 다른 경지를 개척하는 기회를 열어 준다.
기존 회화의 단순한 모방에서 벗어나 자기 혁신을 거듭하는 실험성에 근거하여 그는 작품에 몇 가지 정신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첫째, 안주를 기피하는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기질에 의해 발현되는 창조적 정신, 둘째, 자연의 정기가 스민 기운을 표출하려는 자연 회귀적인 창작 정신. 셋째, 자유분방한 직관과 동심의 세계를 통하여 이루고자 했던 천진성. 넷째, 신체장애를 여유와 감내로 이겨내고 이를 승화시켜 명랑하게 표현한 해학성 등은 그가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정신세계이다. 이는 민화적 기법과 특징에 잘 부합되어 바보화풍의 독창성과 작품의 깊이를 더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3. 작품경향에 따른 구분
(1) 제1기 일본화적 사실화 세계
제1기 운보의 작품경향은 일본화적 사실화 세계이다. 이당 김은호의 문하에서 방법을 배우기 시작한 1931년에서부터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화단의 신예로 두각을 나타내는 시기로 본다. 김기창의 수업이 이당 김은호의 문하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청년시대 김기창의 화풍은 스승 이당의 화풍을 충실히 계승하는 맥락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채색을 위주로 한 인물화라는 장르가 주로 그가 다루었던 내용이자 양식적 특성이었다. 필선미 보다는 채색의 가치가 더욱 두드러진 화풍이었다.
식민지 통치하에 있던 한민족의 울분 내지 분노, 정열 등을 예리하게 파헤치지 못하고, 운보 자신의 주위에서 보여진 정적인 소재만을 다루었을뿐 아니라 창조적이고 모험적인 시도는 찾아 볼 수 없다.
운보의 초기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1931년에 제작한 <엽귀>이다. 이전에 그려진 그림들은 섬세하고 부드러운 필치의 여성적 표현을 한 반면에 이 작품은 대단히 남성적인 성향이 짙다. 수직선 구도를 사용함으로써 엄숙하고 장중한 이미지를 연출하고 무질서하게 서 있는 옥수수 대와 잎은 세 사람의 인간에 의하여 압도당하고 있다. 치밀한 묘사력을 바탕으로 한 안정된 화면 전개로서 운보의 회화의 경지가 어느 선에 도달하고 있는지를 입증하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 되었다.
운보의 생애에 가장 큰 기쁨을 주었으며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해 준 작품 <고담>은 할머니를 중심으로 넘쳐흐르는 격조 높은 작품이다. 원형구도로 매우 정서적이고 가정적인 평화로움이 넘쳐흐르는 작품으로 한 가정의 평화를 통해 보는 이의 마음에 감동을 자아내게 한다. 김기창이 지니고 있는 철저한 예술적 의지 어떤 소재나 표현도 자유롭게 구현해 낼 수 있는 완벽한 장인적 요소가 이 같은 엄격한 과정 속에 터득되었기 때문에 이후 일본의 영향과 스승의 예술적 영역을 탈피해 자신의 독자적 세계로 매진 할 수 있었다.
(2) 제2기 반추상화 세계
해방과 더불어 기존의 방법과 전통적 관념에서 대담하게 탈피하려는 모험을 스스로 자초하였다. 이 같은 변혁의 이면엔 당시 몰선채화의 기법을 일본화의 양식으로 매도하고 있었던 시대적 분위기로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1950년대에 이르러서 운보는 당시 서양화단에서 나타나고 있었던 서구 사조인 입체주의나 표현주의의 영향을 통해 한국화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함에 있어 적절히 이용하였다. 운보 작품의 제2기인 반추상화 세계는 6.25동란과 피난시절의 각박한 현실 속에서 나타난 입체적인 경향의 작품으로 <구멍가게> <노점> <보리타작> <복덕방>등이 있다. 1950년대 초반에 제작된 일련의 입체적 구성의 작품 내용은 피난지 군산에서 제작한 것으로 피난시절의 가난한 일상이 모티브가 된 것이다. 그의 해방 후 작품에 나타나는 가장 뚜렷한 변화의 특징 가운데 굵고 힘찬 선조의 구성력을 먼저 들지 않을 수 없다.
운보의 작품세게 제2기에 속하는 ‘입체파적 풍속화’는 화조, 인물 산수 등의 전통적 소재들은 과감히 버려졌고 삼원법에 의한 원근법이나 운필과 용묵에 의한 대상의 묘사도 전통적 방식과는 판이라하게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우향 박래현과 깊은 영향을 부고 받으며 전개시켰던 이 양식은 마치 서양의 입체파 화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외계의 대상을 화가 자신으 시각에 의해 해체하거나 종합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그렇게 함으로써 운보는 화면 구성의 자율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김기창의 격정적인 운필의 구사는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 초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가장 현저하게 나타났다. 작가로서의 왕성한 의욕과 자기세계로이 완성을 향해 치닫는 시기로 운보다운 세계의 여러 단면이 유감없이 발휘된 시기로 보아진다.
(3) 제3기 추상화 세계
1960년대 중반에 이르면서 완전한 추상 작품이 나타나게 된다. 추상표현은 형태나 색채 조화등의 자율적인 화면 요소를 통해 인간의 마음을 합리적으로 움직이는데 그 복적을 두고 있다. 운보가 주장하는 동양화는 심상 예술이라는 점에서 유화에 사용되는 재료에 비해 차이가 있지만 추상 예술은 동양화의 현대적 변화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운보의 예술관에 일치되는 것이다.
이미지란 자첵 이미 함유하고 있듯, 대상에서 오는 반영적 흔적임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으로 지시할 수 있는 형상은 찾을 수 없게 한다. 1960년대 중반이후에서 바보산수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제3기 운보의 추상화 세계로 동양화에 있어서 추상성에 관한 새로운 가능성을 나타내고 발표하는 시기로 본다. 그는 독자적인 실험을 거듭하여 현대의식에 밀착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4) 제4기 바보산수화 (민화적 화풍)
제 4기에 해당하는 운보의 바보산수화는 민화에서 체득한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자기만의 독자적 세계를 이룬 대표적 작품경향으로 볼 수 있다. 김기창 예술 후반기에 가장 두드러진 변모의 양상은 이러한 민화에 대한 영감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화가 지니는 소박하면서도 원시적이 기법에서 조형감각을 느꼈고, 민화 제작자들의 자유로운 화면구성과 조형적 가치를 모르는 원시성, 풍부한 상상력, 비기교적인 표현에서 운보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매력에 동화되었다.
민화를 자신의 방법으로 변형해 내는 일련의 작화를 김기창은 ‘바보산수’라는 유머러스한 개념으로 명명하고 순수한 내면을 유감없이 드러내 놓고 있다. 민화를 모티브로 바보산수, 장생도, 꽃, 새 등의시리즈 등을 선보이며 1965년부터 3년간 걸쳐 바보산수의 황금기를 이뤘다. 바보산수가 시도되고 있던 시기에 한편에선 이른바 ‘청록산수’란 장식적 산수화들이 활발히 제작되었다. 종래의 풍속도적 시각의 산수이지만 기법적인 면에서 바보산수의 장식적인 톤이 자연스럽게 변주된 것으로 파악된다.
바보산수, 청록산수, 문자도, 서상도 등 조금씩 다른 경향의 작품을 제작하면서 수익을 장애 사업과 복지원 건립기금으로 사용하게 되지만 운보의 전반적인 회화세계를 논하는데 있어서는 일단의 걸림돌로 남게 되었다.
(5) 제5기 심상세계 (점.선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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