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이론

천경자의 생애와 예술세계

장쌤 미술 2009. 11. 15. 21:19

천경자 (1924 ~ )

 

 

Ⅰ. 서론

 

채색화를 왜색풍이라 하여 무조건 경시하던 해방 이후 1960년대 우리 화단의 그 길고 험난했던 시기를 극복하고, 작가 정신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생활 감정을 포함하여 자연의 아름다움, 생명의 신비, 인간의 내면세계, 문학적인 사유의 세계 등 폭넓은 영역을 포함하여 작가의 인생에 대한 이해 방식을 보여주는 천경자의 작품세계를 알아보도록 하자.

 

Ⅱ. 본론

 

1. 천경자의 예술세계 - 생애

전남 고흥에서 부친 천성욱과 모친 박운아의 1남 2녀중 장녀로 태어났다. 본명은 옥자(玉子)였다. ('경자'라는 이름은 천경자가 센티멘털하던 소녀 취미로 스스로 지어 붙인 이름이라 한다)그녀는 여동생 옥희와 남동생 규식과 고흥읍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수려한 풍경을 가진 고장은 그녀의 유년기의 감수성을 풍부하게 하는데 한몫하였다. 그녀는 고흥에서 유치원과 고흥보통학교를 다니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유년기의 천경자는 외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특히 그녀의 외할아버지는 천경자의 문학적 소양을 길러 주고 소질을 게발해 주는 사부(篩父)의 역할을 하였다. 또한 천경자의 어머니는 무남독녀 외딸로 태어나, 당시로는 보기 드문 재원으로 외할아버지 못지않은 소양과 기질을 딸에게 대물림해 주었으며, 천경자는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묵화를 치거나 친구들과 모여 수를 놓다가 때로는 단가를 부르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예술가의 꿈을 키워나갔다. 또한 그녀는 보통학교 시절 교정에서 열린 박람회장에서 소록도 나병원 간호부로 있던 선배 길례 언니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후 길례언니는 천경자의 연작에 등장하는 상징적인 여인이 되었다.

 

광주공립여자보통학교로 진학해서는, 답답한 기숙사를 빠져나가 시내 이발관에서 단발을 하고 돌아와 교내를 떠들썩하게 하여 퇴학 문제까지 논의되었다가 가까스로 면했던 일도 있었다. 그 무렵 천경자는 영화 잡지를 많이 사 보았는데, 여배우의 커리커처를 잡지에 그려보내면 다음 호에 실려 나오기도 했다.

 

여학교 졸업반이 되면서 천경자는 동경 유학을 결심하였고, 이듬해인 1940년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지금의 동경여자미술대학)에 진학하였다. 동경에서 그녀는 당시 인물화의 대가라고 이름나있던 이토 신스이의 문하생이 되고 싶어하였으나, 실패하고 대신 고바야가와 기요시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노점>이라는 그림을 처음으로 출품하였으나 낙선하였고, 이듬해 반신불수 외조부를 모델로 한 <조부>가 22회 선전에 입선하게 되었다. 뒤이어 1943년, 외할머니를 모델로 한 졸업 작품 <노부>가 마지막 선전에 입선하고, 고바야가와 선생이 소속한 인물화 단체 청금회전에 입선하였다.

 

유학 시절, 첫 남편 '이철식'을 만나게 되어 결혼을 하지만(1944) 결혼은 얼마 못가 파경에 이르게 된다. 이후 이철식과는 6.25 전란으로 인해 인연마저 끊어지게 된다. 이 시기의 일은 전남여고 강당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에 처음 만났던 지방 신문기자 김씨(천경자는 그 남자의 실명을 밝히지 않음) 와의 인연, 그리고 여동생 옥희의 이른 죽음(1951년 28세의 나이)과 더불어 첫 결혼의 실패는 천경자의 삶과 작품세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천경자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화가들이 배출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한 명으로서 우뚝하다. 채색화를 왜색풍이라 하여 무조건 경시하던 해방 이후 60년대까지의 그 길고 험난했던 시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채색화 붐이 일고 있는 오늘을 예비했던 그 확신에 찬 작가정신으로 말미암아 그녀의 존재는 더욱 확고하다.

 

2. 천경자의 예술세계 - 작품세계

 

천경자는 1998년 자신이 제작한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하였다. 기증된 작품들 중, 32점은 서울시립미술관의 상설전시 <천경자의 혼>을 통하여 살펴볼 수 있다. 상설전시 <천경자의 혼>에서는 테마에 따른 다섯 개의 섹션으로 전시를 구성하여 천경자 특유의 자전적 채색화를 비롯하여 작가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자화상과 해외 스케치 여행 중에 만난 이국(異國)여인의 모습을 담은 인물화, 지구를 몇 바퀴 돈 세계 여행을 통해 제작한 여행풍물화 및 문학 기행화, 학창 시절의 습작 등 다양한 유형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천경자의 그림은 그 자신의 생활감정을 포함하여 자연의 아름다움, 생명의 신비, 인간의 내면세계, 문학적인 사유의 세계 등 폭넓은 영역을 포괄한다. 그녀의 작품세계에서 중심적인 이미지로 떠오르는 꽃과 여인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통한다. 일상적인 감정을 그림 속에 그대로 연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그림은 체험적인 인식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녀의 작품에 나타나는 꽃, 동물 등의 소재를 비롯하여 독특한 색채나 구성 등은 훗날 '천경자 화풍'이라고 일컫는 작품경향으로 이어진다. 그녀의 그림에서 꽃과 여인은 아름다움 그 자체이면서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상징성을 내포한다. 일상적인 생활감정 뿐만 아니라, 속내를 은유적이고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상징적인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또한 천경자의 작품은 '자전적'이라는 평과 함께 천경자만의 독자적인 화풍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녀의 작품이 '자전적이다'라고 하는 것은 작품 속에 담겨있는 모티프나 전개가 작가 자신에게서 비롯됨을 의미하는데, 거의 모든 작품에서 천경자는 자신의 삶과 꿈, 환상, 동경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이렇듯 작품에 드러나는 특유의 문학적 감수성과 서정성은 자신의 삶의 경험에 기인한 (자전적)감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천경자 자신은 이러한 감성을 한마디로 '한(恨)'이라 표현한다. 이러한 자전적 성격은 1950∼70년대의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많이 드러나는데, 특히 '천경자'라는 작가의 존재를 화단에 강하게 각인시켜 준 <생태>]를 비롯하여 [ <여인들>], [<바다의 찬가>], [<백야>], <자살의 미> 등 6점의 작품을 꼽을 수 있다.

천경자의 작품에는 인물화가 많은데 특히 여성으로 일관되는 여성시리즈 인물화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일종의 '자화상(自畵像)성격의 인물화'이고 또 하나는 일상생활이나 여행을 통해 만난 '실재 인물들을 대상으로 그린 인물화'이다. 천경자의 인물화에 나타나는 여인들은 단순히 작품 소재만이 아닌 바로 작가 자신의 투영된 모습 즉 분신(分身)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이는 그가 자신의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인들의 묘사를 통해 새로운 유형의 '생명체'를 그려왔고, 또 이것이 천경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분신으로 탄생되는 수단이 되어 인물화는 그의 내면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천경자의 작품에는 다른 작가들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작품세계가 있는데 바로 여행을 통해 제작한 '풍물화'들이다. 이 작품들은 작가가 30여 년 간 다녔던 해외여행을 통해 제작된 것으로 이국에서 접했던 이색적인 자연과 풍물들을 스케치를 통해 꼼꼼히 기록한 후 여행에서 돌아와서 오랜 제작시간을 거쳐 여행의 감흥과 회상을 되살리면서 거의 완벽에 가깝게 치밀하고도 독특한 채색작업을 통해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시킨 것이다.

 

3. 천경자의 시기별 회화 세계

 

(1) 제1기 - 객관적 사실주의와 일본화 답습시기 (1941~1946년)

 

동경학교 재학 시절에 화가로서 서울로 환도하기 직전까지의 시기를 말하며 사실주의 경향을 띤 시기가 그것이다. <조부상>과 <노부>로 화가의 본격적인 길로 들어섰다. 이 작품 모두는 세밀한 사실적인 기법으로 행하여졌으며 특히, 작품 <노부>는 세필로 깔끔하게 처리한 점에서 천경자가 쌓은 표현력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초기 화법에 있어서 일본적인 경향이 있었던 시기로 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시대의 경향 속에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이 된다.

 

(2) 제2기 - 독자적 화법의 모색 시기 (1947~1958년)

 

<조락>은 동양화 기성 화법에 대한 새로운 표현 수법으로 현대적 회화 표현의 필요성을 스스로 깨우친 결과이다. 그러나 천경자는 자연적 주제를 남다르게 감수성으로 전개해 나가면서 독자적인 색채감각과 확실한 묘사력 등을 보여줌으로서 특정의 양식으로 규정지을 수 없는 독자의 경지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변화의 대표작인 1955년 제작된 <정>은 늦가을 해바라기 밭 속에서의 소녀와 검은 고양이를 주제로 하여 비교적 전통적인 한국화풍으로 그렸으나, 환상적인 색채와 몽롱하고 부드러운 필법으로 표현하였다. 이 작품 이후로 주황과 적색이 가득한 색채가 밝고 환상적인 톤으로 바뀌어가기 시작한다.

 

(3) 제3기 - 초현실적 화법의 도입 시기 (1959~1968년)

 

60년대로 오면서 색채의 의미가 한결 두드러지고, 자전적인 요소 즉, 남녀 간의 정다운 사랑을 꿈꾸는 내용이 주제로 대두되면서 꽃, 나비, 새 등의 소재와 함께 색다른 공간이 도입되어 형성된 초현실적 화풍이 확립되는 시기이다. 천경자의 독특하고, 풍부한 문학적 감성이 드러나는 시기이며 <생태>와 같은 어두운 소재에서 벗어나 환상적인 색채를 전개시키고 있으며, 색채는 이미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그 자체의 존재성을 획득하고 있다.

30대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천경자의 부유하며 아롱지는 꿏구름과 호젓한 나비들과 이름 모를 새들, 그리고 오붓한 애인들을 너울너울 드리우는 즐겁고도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가 전개되게 된다. <전설> <두사람> 에서 그러한 경향을 볼 수 있다.

 

(4) 제4기 - 이국적 소재의 도입과 정착 시기 (1969년 이후~ )

 

1969년 시작된 해외여행은 보다 더 풍부하고 선명한 색채의 구사력과 폭넓은 소묘력의 새로운 솜씨에 자신을 한층 굳히게 되었고 주제와 소재의 장을 넓혀 주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개별적인 형태를 강조시키고 주제와 배경의 구분을 명확히 제시할 수 있는 색채를 선택하고 있다. 또한 해외여행에서 얻은 이국적 특색을 주관적으로 재해석한 화면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서구적인 소재에 더욱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색감은 강렬해지고 색상의 강조가 두드러진다. 원시적 외향의 화장기가 짙은 여인들은 화려함의 이면에 때 붇지 않은 자연의 일부로서 생성된 순수함이 물신 풍긴다. 이 시기는 해외 풍물화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자전적 요소가 결합되어 지속적으로 추구되었다.

Ⅲ. 결론

 

천경자는 사실적인 형태를 통해 표현하였다. 부분적으로 단순화시키는 조형상의 변형을 받아 들임으로서 사실주의적인 관점에서 표현하였다.

조형성으로 볼 때 작품에서 형태들의 배치는 정면성과 수직 원근법을 적용하여 비교적 단순 평이하게 전개되어 화면의 표면 성을 강조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적, 주황과 청록, 거기에 흰색과 보라색이 조화를 이루면서 화면에 배치되고 그러한 가운데 부엉이나 올빼미와 같은 새, 꽃, 구름과 같은 형상이 화면 상부에 장식되어 정다운 정경을 보여준다.

천경자의 그림은 그 자신의 생할 감정을 포함하여 자연의 아름다움, 생명의 신비, 이난의 내면세계, 문학적인 사유의 세계 등 폭넓은 영역을 포괄한다. 천경자의 동양과 서양, 화려함과 슬픔 등이 극적 대비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한의 정서를 바탕으로 호려한 채색을 통해 상호 조화를 이루며 나타났다. 이는 천경자가 문학적 상상력과 감수성을 대담하고 화려한 색채와 상징적인 형태로 승화시켜 장식성이 강한 호면을 구상한 것을 의미하며, 천경자로 인해 현대 채색화의 활성화를 이룰 수 있었다.

 

 

 

 

- 참 고 문 헌 -

 

▪ 오현주(2007), 천경자의 채색화 연구, 군산대학교 학위청구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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